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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진다는 것
20.10.23
admin

 


 

 

 

 

 

보여지는 삶은

유일한 명작을 만들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귀중한 대리석 재료를

자신의 의지대로

훌륭한 작품으로 조각하지 못하고

타자들에게 던져줌으로써

쓸모없는 돌 부스러기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보여진다는 것은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으로써 수동적 삶을 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자아는 타자와 함께 공존하며 서로의 교류에 의하여 영향을 주고받는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보는 존재이지만, 타자의 입장으로는 보여지는 존재가 된다. 보는 존재로서, 보여지는 존재로서의 자아는 내적자극과 외적자극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내적자극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정해놓고 자아충족감을 높이는 것이며, 외적자극은 타자에게 보여진 것의 반응을 자신이 봄으로써 형성된 것으로 타자에 의해 자아충족감이 결정된다.

 

내적자극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으며 적은 것으로도 자아충족감을 느끼는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된다. 이에 반해 외적자극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혼란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적 상황으로 인해 자아충족감의 상실로 불안정한 삶을 누리게 된다.

보여지는 삶에 치중하는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관계없이 평범한 것에 만족할 줄 모르며, 보다 강렬하고 화려한 불완전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의 만족할 줄 모르는 본성을 알지 못한다.

 

이는 한계가 없는 물질의 추구로 허영과 안일한 삶을 원하는 탐욕의 늪에 빠지게 한다. 탐욕을 담는 그릇은 밑이 터진 자루와 같아, 만족함을 모르는 불처럼 아무리 쌓고 쌓아도 채워지지 않는다. 또한 물질의 충족이 정체 상태에 이르게 되면 자아는 권태에 빠지게 되고, 물질의 충족이 감소하게 되면 자아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한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람이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 전성기의 부를 누릴 수 없음에도 타자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현재의 상황에서 버거운 줄 알면서도 품행 유지나 체면치를 위한 비용이 과도하게 지출된다. 과다 지출은 점점 더 어려운 경제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한때의 영화로운 시기와 현실의 괴리감은 감당키 힘든 자괴감으로 종국엔 자아정체성의 상실로 인한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자아를 위한 삶이 아닌 보여지는 삶, 즉 타자의 상황 변화에 이끌려가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아정체성의 확립이 이루어질 수 없다.

자아정체성이 없는 삶은 페르소나(Persona)의 상황에 맞닥트리게 되고,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타자의 반응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어지는 무기력감은 자기 상실에 빠지게 된다. 인기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과, 자신의 비참함을 잊기 위한 마약중독으로 나락에 빠진 타락한 삶 등은 보여지는 삶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또한 페르소나 상태에 빠져, 타자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삶을 강요당한 자아는 타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자아의 상태를 비관하게 되고,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자멸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착한 어린이, 주위의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바른생활 어린이들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 시절에 자살을 하는 것도 보여지는 삶으로 강제 당한 결과물이다.

이와 같이 보여지는 삶은 자아의 생존과는 관계없는 수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게 되며, 끊임없이 요구되는 욕망에 이끌려 다니는 노예의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여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자아정체성의 확립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삶이야 말로 보여진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보여진다는 것으로부터 탈피한 사람은 이미 한쪽 발을 천국의 문 안에 내디딘 존재로서, 생의 고뇌로부터 절반 이상의 해방을 얻은 - 삶의 고통이 절반 이상 감소된 -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명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차창 밖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에서 내릴 때 자신에게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부러워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각종 진귀한 보석과 금붙이로 화려한 장식을 하고 고급 모피로 된 고가의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자신을 보며 부러움의 눈길을 던지는 타자들의 행위에 의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보여지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타자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을 자신의 실체로 인식하며 그들만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자존감과, 우월의식, 행복들은 그들보다 위 단계의 보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 앞에서는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비애와 열등감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 한순간 지금까지 자신에게만 쏠렸던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타자에게로 모두 몰려가고, 자신의 곁에는 단 한 사람도 머문 사람이 없다는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것이다. 여태까지 믿어온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고충을 겪게 된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물질의 욕구에 집착하게 되고 욕망의 끝에는 비참함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타자의 존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로빈슨 크루소저럼 현실에서 내버려진 삶을 추구하면 된다. 무인도라고 생각했던 섬에서의 삶은 제도권으로부터, 타자로부터 모든 행위에 있어서 사면권을 부여 받았기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 비판을 받을 일이 없으며,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꾸민다거나 애쓸 필요도 없다.

 

법과 제도로부터 주어지는 압박에서 해방된 삶은,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삶 자체의 진정성에도 바람직하며 실존의 존재이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온전히 누리게 됨으로써 높은 자존감을 얻게 된다. 누군가를 의식하여 숨통을 조이는 듯한 넥타이로 목을 조를 필요가 없으며 화려한 드레스보다는 정글생활에 필요한 단순하고 격식 없는 옷차림이 좋고, 비싼 거위털 침낭보다는 따스한 검불더미가 더 편안한 잠자리가 된다. 이러한 삶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으며 생존에 필요한 단순한 것들 몇 가지만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단순한 행복의 이치도 사치심과 허영심에 얽매인 사람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략하고 만다. 보여진다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며 설사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확신이 없는 불안으로 인해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보여진다는 것은 항상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자신과 타자의 비교에서 우위를 정하였을 때에만 자아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비교의 대상인 타자가 끊임없이 바뀌므로 순간적으로 자존감을 얻거나, 상실함으로써 불안한 행복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진정한 자존감이란 자아의 내적 조건의 충족감에 의하여 스스로 누릴 수 있는 것이지 타자와의 비교우위로 인한 외적 조건의 충족감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 화장을 하고 강렬한 조명 아래 자신의 진면목이 아닌 화장에 의해 바뀌어 버린 모습을 관중에게 보여주는 삶에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스타들은 자신의 생얼굴(참모습)이 공개되는 것에 기피를 하게 된다. 인생은 영원한 연극이 아니다. 언젠가 관객이 떠나고 강렬한 조명이 꺼진 후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에 덧씌워진 화장을 한 겹, 한 겹 벗겨낼 때의 느낌은 씁쓸하고 허전함만을 남길 뿐이다.

 

보여진다는 것은 인간이 실존으로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이와 더불어 타자에 의한 자신의 존재감의 인식도 불완전함을 본질로 타고 태어난 인간에게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자아충족감의 필수적인 것이다. 자존감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질만으로 자존감을 모두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육신을 지닌 인간이 영혼의 만족만으로 자존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물질의 탐욕과 물질을 가진 게 많은 자가 부자가 아니라, 필요한 물질이 적은 자가 부자이다. 가진 게 많음에도 탐욕에 끌려가는 사람은 항상 궁핍함을 느끼는 가난한 자이나, 가진 게 적음에도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유한 자이다.

 

탐욕에 빠지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선 극기(克己)의 훈련을 항상 하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한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극기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극기는 욕망과 정념을 누르고 이상과 목적을 실현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싸움터에서 적에게 이기는 자는 강한 자이나, 자기 자신을 이기고, 다스리는 자는 영원한 승리자이다. 극기야말로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주는 모순을 뛰어넘은 유일한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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