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NARSHA VIEW

인문학강좌

1/10⁴??의 인간
20.11.18
admin

 


 

 

 

자식은

부모의 소산물이 아니다.

자식은

자신만의 특질을 가지고

그것을 꽃피워

자신만의 향기를 뿜어야 한다.

부모나 자식이나

모든 인간에겐

자신만의 향기가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향기를 닮으라고

타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먹는 음식 중 밀가루와 팥을 이용한 식품들이 많이 있다.

밀가루 전병, 팥죽, 팥이 들어간 떡, 팥빵, 붕어빵 등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일지라도 그 맛은 제각기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조리자의 미각, 제작방법, 재료의 구성 등 여러 가지 변인들로 시각적으로 똑같은 모양일지라도 그 맛은 모두 각각 다르다.

 

방송이나 메스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맛집이라는 곳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한 곳을 찾아가 보면 맛 집 주변의 가게들은 손님이 별로 없는데 유독 맛집만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동일 재료로 조리한 음식인데도 일반 음식점과는 달리 특이한 맛을 내는 맛집은 그 나름만의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밀가루 중에서 일반 밀가루에 비해 1/10400성의 희소성을 지닌 특이한 밀가루와, 일반 팥에 비해 1/10400성이라는 희소성을 지닌 팥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밀가루와 팥이 존재할 가능성은 지구상에서 1/10......0 0400개 붙은 분모를 가진 것 중에서 단 1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소가치를 지닌 물질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 밀가루와 팥이 만약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당신은 이 희귀한 재료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밀가루와 팥을 정해진 비율에 따라 배합하여, 정해진 공법을 거쳐 형태만 달리한 채 다량으로 생산되는 기계식 빵은 절대로 장인만의 노하우를 거쳐 수동으로 생산되는 빵의 가치(상품가치포함)를 따라갈 수() 없다.

 

당신에겐 이미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맛집을 차릴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 많은 실험과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은 이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맛 집으로 당신에게 명예와 엄청난 부를 선물해 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토록 희귀한 재료의 특성을 모르고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그러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당장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당신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팔아버린 제품의 재료의 특성의 가치를 깨달았을 때는 당신에게 평생 한 번 밖에 허용되지 않는 행운을 당신 스스로 차버렸다는 자괴감으로 비통함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무리를 지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심지어 경쟁을 하면서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아니 더욱 경악할 일은 그 재료라는 게 음식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분신이라는 사실이다.

 

MHC(주조직적합성복합체: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 Lex)라는 거대한 유전자군이 인체에 있다. MHC는 단백질을 암호화(encoding)하는 유전자 부분으로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서로 다른 MHC 대립형질로 존재한다.

 

로또 복권의 당첨 확률은 1/8145060로서 1/10*7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비해 동일한 MHC를 가진 인간이 존재할 확률은 1/10*400성이다. 즉 여러분의 자녀는 로또의 당첨확률보다 57배나 되는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기적 같은 관문을 통과하여 여러분에게 자녀로 선택된 것이다. 이러한 희소성을 띤 생명들은 자라면서 부모나 이웃들의 강요에 의해 서서히 특질을 잃어가며 일반적인 평범한 생명체로 살아가게 되는 서글픈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유아기에 접어들면서 말을 익히게 되면 유아가 가장 먼저 사용하는 의사 표현의 단어들은

아니, 싫어, 내가 할 거야, 미워등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유아기의 자기중심적 사고에 기인하는 것들로써 자신만의 특질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때 부모는 유아에게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 하지 말고, 무조건적인 반대나 강요를 하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유아가 왜 고집을 피우고, 투정을 부리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충분한 관찰을 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유아만의 특질을 읽어 들여 유아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유아들은 개별의 뚜렷한 독자성을 지니게 되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자신만의 고유한 특질을 지니게 된다.

 

어린애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들 때에 동료가 자신의 것을 보지 못하게 몸으로 가리거나, 홀로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아이들에게 숨겨진 특질을 짚어 보자.

첫 번째로는 자신만의 개별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의 차별성을 중시하며, 독창성이 강하기에 모방을 싫어하고, 자신의 창조성으로 자신만의 표현을 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만족감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눈길을 강하게 의식하기에 수치심을 잘 느끼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이고, 사회활동에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세 번째로는 현재 행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행위를 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지루함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심리적 특질이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행위 하나에도 여러 가지의 특질이 숨어 있다. 이 특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 강제력을 행해서는 안 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행위를 이해하여야 한다.

 

착한아이컴플렉스라는 심리적 문제가 있다. ‘위키백과에는 이것은 착하거나 말 잘 듣는 것은 좋은 것, 착하지 않거나 말 안 듣는 것은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타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이르는 말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이 하는 말에 집중하며 갈등 상황을 피하고 타인의 요구에 순응한다. 반면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는 억압하기에 타인을 향한 투사나 반동형성의 행동이 뒤따르게 되며 언제나 위축되고 우울한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는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때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나 엄격한 집안 교육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는 청소년들은 자아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고,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시대적 변화에 대한 적절한 자신만의 대처는 속수무책의 상태에 빠져 버렸다.

 

영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제도화된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은 1/10*400의 확률로 특질화된 인간을, 지구상에 생존하는 인류의 총합 중의 한 사람으로 대비한 1/10*9의 특질을 지닌 인간으로 퇴화시켜 버린 결과를 초래하였다.

 

영유아원을 기점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의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체육학원 등, 중학생 시절의 국어학원, 영어 학원, 수학학원 등, 고등학생 시절의 다양한 사설학원 등을 거치며, 자신의 생득적인 특질과는 무관한 제도화된 천편일률적인 교육시스템으로 부모나 사회에 의해 강제적으로 내몰린 지난날의 이력이 오늘날 평범한 일상인의 한 사람으로 자아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로 전략해 버린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지고 장을 간다는 말처럼 나만의 주장이나 주관이 없이 타자들의 행동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현 세대의 젊은 부모들은 20여 년 전부터 자신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을 따라가는 타자의 삶을 살다 보니, 지금은 모든 부모들이 단체로 동일한 스케줄에 의한 동일한 교육을 자식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행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특히 오늘날의 부모가 아동 교육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아동을 오늘의 사회 상황에 맞춰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는 그 시점의 생활변화 조건에 맞춰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부모들은 현재의 상황에만 맞춰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안정되고 생계 걱정 없는 직업군 중 하나를 택해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자녀 개개인이 지닌 특질과는 상관없이, 자녀가 하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하는 인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무사 안일한 사고에서 결정된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실정에서 앞으로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게 되고 그 일들을 인공지능 로봇이 담당하게 된다. 인간의 오감을 느끼고 스스로 사고하는 판단할 줄 아는 인공지능(AI) 로봇의 등장은 인간이 육체를 움직여서 하는 단순노동은 물론이거니와 고도의 의료행위나, 자식을 교육시키는 교사의 영역 등에게서 인간을 퇴출시켜 버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예고된 미래사회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로봇과의 뚜렷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기계와 인간의 고유의 차별성은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정신세계만이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바로 코앞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부모들은 아직도 동일한 시스템에 자식들을 내던져 두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부모의 어리석은 선택은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올해는 고추 값은 비싼데 배추는 수확하는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인해 한 해의 배추농사를 망쳐 버리고 싱싱하게 출하를 기다리는 배추밭을 아예 뒤엎어버리는 일들과 같다. 다음 해에는 이와 반대로 배추 값은 비싼데 고추 값이 떨어져 싱싱하던 고추가 서리를 만나 시들어 죽게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실패의 경험을 인간은 되풀이 하여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듯 백해무익한 행위를 답습하는 어리석음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자식들에게 고충을 안겨주는 착한 아이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방식에 길들여진 요즘의 청소년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채 자아정체감의 상실에 내몰린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는 하나같이 좋은 게 좋은 게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착한 아이로 성장한 성인은 자신의 오늘이 어릴 적부터 타자의 계획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친 순간 자아 존재감을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은 망망대해에 버려진 채 표류하는 상황임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인간은 신경증, 불면증, 우울증, 무기력증 등을 동반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종국에는 자살에 이르게 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기도 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페르소나(Persona)를 그림자와 같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일컫는다. 페르소나는 환경의 외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형성되는 왜곡된 자아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인간에게 카멜레온의 특성을 지닌 페르소나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자아정체감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지만, 자아정체감의 혼란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에겐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분재를 만드는 사람은 조각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구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만들고자, 생명을 지닌 식물에게 그 자체의 자연스런 형상으로 자라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현대 과학은 식물도 인간과의 교감을 나누는 생명체임을 밝힌바 있다. 분재의 대상이 된 식물은 인간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장고의 기간 동안 수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자신들이 어떤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귀한 자식들의 특질은 무시하고 자식들을 위한다는 거대한 망상하에 자식들을 대상으로 분재작업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부모는 자식을 키우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식을 키워 내지를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을 상실한 채, 자신의 정체성마저 모호한 요즘의 젊은 세대는 갈 길을 잃은 방랑자와 같은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

 

한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조각가에게는 단 하나의 대리석만이 주어진다.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조각가, 건축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상을 만들 때 있었던 일화를 살펴보자.

 

다비드 상을 만들려고 준비된 대리석은 이미 서투른 조각가에 의해 망가져 40여 년간 방치되어 다루기 힘든 대리석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대리석을 이용하여 훌륭한 다비드 상을 조각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어떻게 이미 훼손된 재료를 이용하여 이렇게 훌륭한 조각을 완성할 수 있었냐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대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때가 가장 큰 경이로움과 숭고함을 인간에게 선물하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대자연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자연계 중 유일하게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며 존재하는 생명체가 인간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쩌면 자연계에서 가장 볼품없고 미약한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연계의 법칙을, 질서를 파괴하고 심지어 자신의 자식까지도 마음대로 조작하여 제 고유의 특질대로 자랄 수 없도록 고통을 주며 정상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계의 법칙에 따를 때에 고유의 가치를 지니며, 참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목수는 대패질을 하기 전에 나무의 결을 살핀 후 대패질을 할 나무의 방향을 결정하듯이, 석공도 석재를 자르기 전에 돌의 결을 살핀 후 정을 갖다 대고 망치질의 방향을 결정한다.

훌륭한 조각가는 재료를 선택한 나무의 성질을, 돌의 성질을 깨우친 후 그 고유의 성질을 거스르지 않고 그 성질에 따름으로써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선 1/10400성의 특질을 간직한 채 그만의 독자적인 자유로운 삶을 자유의지에 의해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식은 10400: 1의 경쟁을 뚫고 나에게 선택된 신이 허용한 가장 위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가운데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도 뭔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아무리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역시 우리 인간의 특질이므로, 올바르게 사용될 때는 전 인류를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존 러스킨

목록
수정